교유

위키백과,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.

교유(橋蕤,[1] ? ~ 197년)는 중국 후한원술 휘하의 무장이다. 장훈과 함께 원술의 주요 장수였으며 여포, 조조 등과 싸우다 사망하였다.

생애[편집]

193년(초평 4년) 원술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였다. 교유와 장훈은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.[2] 197년(건안 2년)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여포와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장훈, 교유, 한섬,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줘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. 진규는 한섬·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.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.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교유는 사로잡히고 말았다.[3] 9월(음력),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였다. 연주조조가 몸소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과 이풍, 양강, 악취, 그리고 복귀한 교유를 남겨두고 돌아갔다. 호현(苦縣) 부근에서[4] 참패하여 장훈만 가까스로 퇴각하고[5] 교유는 다른 세 장수와 같이 목숨을 잃었다.

삼국지연의[편집]

사서가 아닌 소설삼국지연의》에서는 상장(上將)의 지위에서 일곱 부대 중 제2로군을 이끌고 소패(小沛)로 향한다. 그 후 조조, 여포, 유비, 손책 연합군이 수춘(壽春)으로 쇄도해오자 5만 명을 거느리고 밖에서 조조군을 맞이하는데 하후돈과의 일기토에서 3합도 안 되어 찔려 죽는다.

각주[편집]

  1. 《삼국지》46권 오서 제1 손책전에서만 喬蕤(교유)라 표기하였다.
  2. 《삼국지》6권 위서 제6 원술전에서의 대장군(大將軍)은 대장이란 의미로 '軍'(군)은 군더더기이다. 노필 편, 《삼국지집해》
  3. 사마표, 《구주춘추》 ; 배송지 주석, 《삼국지》7권 위서 제7 여포에서 인용
  4. 《삼국지》17권 위서 제17 우금. 苦縣은 고현이 아니라 호현이라 발음한다.
  5. 《후한서》75권 열전 제65 원술

참고 문헌[편집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