서정범
서정범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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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상정보 | |
출생 | 1926년 9월 23일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|
사망 | 2009년 7월 14일 오후 7시 30분 대한민국 |
사인 | 병사 |
거주지 |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|
성별 | 남성 |
국적 | 대한민국 |
직업 | 교육인, 대학교수, 철학자, 시인, 수필가, 국문학자, 민속학자, 사회학자, 무속연구가 |
학력 | 경희대학교 |
자녀 | 아들 서호석, 딸 서승현, 서승혜 |
웹사이트 | 서정범의 미리내 문학관 |
서정범(徐廷範, 1926년 9월 23일 ~ 2009년 7월 14일)은 대한민국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시인·국문학자·수필가·민속학자·무속연구가·사회학자·철학자였다. 본관은 이천 서씨이다.
1958년 자유문학으로 문단에 등단, '병상기(病床記)'와 '미리내' 등 많은 수필을 발표했고, 모교인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. 2006년 성추문 루머에 휘말려 대학교수직을 사퇴했다. 이후 무속인의 무고임이 밝혀졌으나 교직에 복귀하지 않았다.
생애[편집]
생애 초반[편집]
1926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나[1]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[1],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. 이후 모교인 경희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었다.
문학 등단과 어학 연구 활동[편집]
1958년 《자유문학》으로 등단하였고, ‘병상기’ ‘미리내’ 등 여러 수필을 발표하였다. 1963년 5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임용, 이후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장과 문인협회 부이사장, 한국어원학회 초대 회장, 한국수필가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고,[1] 그는 한국어와 한글의 어원을 연구하다 만주어, 몽골어 등 동북아시아 언어의 기원과 유래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. 한글과 한국어의 기원을 연구하며 그는 무속, 토테미즘, 샤머니즘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여, 1950년대부터 3~4천여 명의 무속인, 박수 등을 만나 면담하였다.
1971년 4월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, 1985년부터 대학가의 유행어 등을 모아 ‘별곡 시리즈’를 펴냈다.[2]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것이 책으로 엮이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[2] 그는 “얘기들을 정리하면서 해마다 관심사가 무엇인가, 대표적인 사건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”고 했다.[2] 또한 ‘참새 시리즈’ 등을 수집하기도 했다.
1980년 이후 한국수필 주간, 수필춘추 고문 등으로 선임되었다. 이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 교수로 초빙되었다.
1981년 한국문학상, 1993년 펜클럽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 수필문학상, 2004년 제 8회 동숭학술상 공로상을 수여받았다.[3]
사회 활동[편집]
1996년 12월 한국어원학회 초대회장, 1990년 3월 경희대학교 문리과 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고 1998년에는 ‘한겨레 21’과의 인터뷰에서 귀신은 없다고 주장했다. 그에 의하면 귀신은 잠재된 공포감의 표출일 뿐이라는 것이다.[4] 2002년에는 저서 ‘한국무속인열전’을 펴냈다.[5]
2006년 2월 1일부터 2월 7일까지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부적전시회에 참석하였다.[6]
2006년 5월 21일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이 주관한 제9회 전국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.[7]
성추문 무고 사태[편집]
2007년 3월 한 무속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피소되었는데[8] 검찰은 무속인의 고소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해 그를 무혐의 처리했다.[8] 무속인의 녹취록이 철저히 짜깁기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. 검찰은 많은 관련 사고가 있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조작된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고.[8] 검찰은 오히려 무고죄로 무속인을 고발했다. 그 무속인은 서 교수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.[8]
무죄가 밝혀지면서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.[8] 성추문 사건은 루머로 결론났으나, 당시 그를 강도높게 비판하던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는 그에 대한 사과를 발표하지 않았다. 이후 경희대학교로부터 복직 요청이 왔으나 거절, 교직에 복귀하지 않았다.
만년[편집]
무속 연구와 어학 연구 외에 방송 출연과 수필가 발굴로 만년을 보냈다. 2009년에는 책 ‘한국문학과 문화의 고향을 찾아서’를 발표했다.[9]
상훈으로는 제18회 한국문학상(1981), 펜클럽문학상(1993), 수필문학상(2000), 2004년 11월 제8회 동숭학술상 공로상[10] 등을 수여받았다.
기타 약력[편집]
저서[편집]
- 《한국 특수어 연구》 (1959)
- 《일본에서 한국어의 샤머니즘》 (1980)
- 《음운의 국어사적 연구》 (1982)
- 《일본어의 원류를 거슬러가다》 (1989)
- 《우리 말의 뿌리》 (1989)
- 《한국어로 읽고푸는 고사기》 (1992)
- 《일본어의 원류와 한국어》 (1996)
- 《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법》 (1999)
- 《국어어원사전》 (2000)
- 《한국무속인열전》 (2002)
- 《한국문학과 문화의 고향을 찾아서》 (2009)
- 《한국에서 건너간 일본의 신과 언어》 (1994)
수필집[편집]
- '놓친 열차는 아름답다'(1974)
- '겨울 무지개'(1977)
- '무녀의 사랑 이야기'(1979)
- '그 생명의 고향'(1981)
- '사랑과 죽음의 마술사'(1982)
- '영계의 사랑과 그 빛'(1985)
- '품봐,품봐'(1992)
가족 관계[편집]
기타[편집]
어원 연구[편집]
한글의 어원, 한글과 국어 발음의 어원, 만주와 고아시아 어의 어원 연구 및 한국어와 일본어, 동북아시아 유목민 언어의 동질성과 유사성 및 그 기원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. 이를 위해 그는 몽골과 만주 등지를 답사하기도 했다.
비속어 연구[편집]
1970년대부터 그는 국어와 한글의 어원의 연구, 방언의 연구와 함께 비속어와 은어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.[12]
무속 연구[편집]
한글과 한국어의 기원, 동북아시아어의 기원 외에 그는 무속, 샤머니즘, 토테미즘 등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.
그는 한국 무속과 토속신앙, 토테미즘 등의 연구를 위해 1950년대부터 40여년간 3천~4천여 명의 국내외 무당과 박수를 만나 면담, 무속, 굿 등의 전승과 지역 무당, 박수 등에게서 내려오는 언어, 전승 등을 채록하였다. 무당, 박수들과의 면담 중 일부는 체험적 저작들인 '무녀별곡' 시리즈로 출간하기도 했다.
그 밖에 방송에도 출연하기도 했다.
수필가 발굴[편집]
1980년부터 한국수필 주간으로 조경희 회장님과 함께 많은 수필가를 배출, 발굴하였고, <수필춘추> 편집고문으로도 활동하였다.
외부 링크[편집]
각주[편집]
- ↑ 가 나 다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 별세 : 사회일반 : 사회 : 뉴스 : 한겨레
- ↑ 가 나 다 [서울신문] ‘최불암 시리즈’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
- ↑ “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”. 2018년 6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. 2018년 6월 12일에 확인함.
- ↑ 인터넷 한겨레21 1998년 7월 16일자
- ↑ 서정범교수 「한국무속인 열전」펴내 :: 네이버 뉴스
- ↑ "부적은 민중 삶이 묻어나는 전통 문화유산" :: 네이버 뉴스
- ↑ <사람들> 한국말 솜씨 최고 중국 유학생 :: 네이버 뉴스
- ↑ 가 나 다 라 마 http://www.dailian.co.kr/news/news_view.htm?id=61710
- ↑ donga.com[뉴스]-[민속 풍속 이야기 20선]풍습-놀이로 본 우리문화
- ↑ 제8회 동숭학술상 안병희교수 - munhwa.com
- ↑ [부음]장영태씨(세계일보 기자) 부친상 외
- ↑ 은어와 비속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국어학자, 한글학자들도 은어, 비속어 연구를 꺼렸다.
같이 보기[편집]
참고 자료[편집]
- ‘참새 시리즈’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 별세 - 경향신문 2009년 7월 15일자
- 국어학자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 별세 - 머니투데이 2009년 7월 15일자
- [깨진 링크([https://web.archive.org/web/*/http://news.kukinews.com/article/view.asp?page=1&gCode=kmi&arcid=0921354612&cp=du 과거 내용 찾기)]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 별세][깨진 링크(과거 내용 찾기)] - 국민일보 2009년 7월 15일자
-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 별세 - 세계일보 2009년 7월 15일자